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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지구촌 교회) 4월 3일 주일설교 말씀 동영상Personal 2016. 4. 4. 20:56
나의 손을 주의 손에 포갭시다. (마가복음 3:1~5)
요즘 우리가 자주 부르는 경배와 찬양 중에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너무나 좋은 가사입니다.
나의 연약한 손과 발을 주님의 능력의 손에 포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중에 「네 병든 손 내밀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A. B. Simpson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찬송입니다. 그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던 이탈리아 이주민들을 위해 이 찬송을 지었습니다.
Simpson 목사님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하여 이 찬양을 썼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손을 붙잡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리던 이탈리아 이주민 성도들은 이 찬송을 부름으로 신비한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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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에 Tommy Tenney의 「균형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이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유대인 회당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발견합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중풍에 걸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고쳐주고 싶어서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셨을 때 어느 쪽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손을 내밀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온전치 않은 손도 있었고, 온전한 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어느 특정한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5절)
『네 손을 내밀라.』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잠시 갈등했을 것입니다.
‘나의 건강한 손을 보일 것인가, 나의 병든 손을 보일 것인가? 나의 힘을 보일 것인가? 나의 약함을 보일 것인가? 나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 앞에서 굳이 나의 부끄러움을 노출해야만 하는가?’
그런데 중풍 병으로 고생하던 이 남자는 예수님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심령을 향해 이렇게 속삭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 너의 주머니 속에 감추어두고 있는 오그라든 손을 꺼내어도 좋다.」
만일 그 사람이 건강한 손을 내밀었다면 그는 여전히 병든 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과감하게 병든 손을 내밀었습니다. 자신의 약함과 부끄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의 치명적인 약함과 수치를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은 어느 손을 주님 앞에 내밀겠습니까?
우리는 교회에 와서 사람들을 만날 때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보이려고 합니다. 사실은 문제가 많은데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온전한 손만 내밀며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사는 것처럼 자신의 약함을 감추고 은폐합니다. 그냥 I’m ok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스스로 위축되어 살아갑니다. 사람이나 모임을 피합니다. 겉돕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칩니다. 우리의 약함 대신 강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Tommy Tenney는 우리에게 이점을 각인시켜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힘에 끌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연약함에 더욱 끌리십니다. 당신의 부족함을 더욱 주목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으로 주님께 나아가야합니다. 우리 속에 감추고 있는 아픔과 상처를 과감하게 끄집어내야 합니다. 때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드러내야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은혜의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중풍병자는 자신의 병든 손을 내밀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5절)
자신의 약한 손을 내밀었더니, 건강한 다른 손처럼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손을 쭉 펴 보였더니, 다른 손과 같이 완전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13절에서는 그의 손이 정상으로(normal) 회복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새 손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합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그의 병든 손이 의학적으로 완전치유 되었다(whole, completely restored)고 설명합니다.(누가복음 6:10)
누가는 오른손 주머니에 숨기고 살아온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선언합니다.
Sick hand가 Strong hand로 바뀐 것입니다. Handicap이 Healthy로 회복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문제의 오른손을 주머니 속에 감추지 말고, 자유롭게 꺼내 완전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을 있는 그대로 부탁하여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 예수님 고치시리.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님 고치시리라.’
당신의 약함과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악재가 하나님께는 호재가 됩니다. 인간의 끝이 곧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당신의 모자람이 하나님의 넉넉함이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사람들 가운데 인생을 아름답게 창조해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네 살에 겨우 말을 시작했고 일곱 살에 겨우 글을 배웠습니다.
천재 과학자 뉴턴은 초등학교 시절의 성적이 맨 꼴찌였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담임선생님에게 ‘2년 동안의 교편생활 중 이렇게 둔한 학생은 처음’이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신문사에 기자로 취직했지만 편집국장으로부터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신문기자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해서 학교를 일 년 더 다녔습니다.
음악가 베토벤은 32세에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그 후에 주옥같은 제 9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최고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터에서 왼팔을 잃은 상이군인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R. Browning 역시 편집자에게 원고를 건넸다가 ‘이거 순 잡동사니 아니야?’ 라는 말과 함께 면전에서 원고를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결정적인 부족함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결점을 절망적인 결점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음료수 이름처럼 2% 부족하게 살아갑니다.
1999년, 한 음료회사에서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를 출시했는데, 그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출시하자마자 경이적인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해의 최고 히트상품이 되었습니다. TV광고에서도 모두 2% 부족한 사랑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음료수는 주스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고, 물이라고 하기에도 2% 부족한 맛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부족함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음료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도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이란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수준이나 이상에 비해 부족하거나 모자란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달을수록 오직 예수님의 손을 붙잡게 됩니다.
우리가 부족할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과 모자람을 인식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약함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이 입은 갑옷으로 골리앗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부족한 다윗의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쳐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하나님만 더욱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울 왕의 갑옷을 찾지 말고, 나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예수님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호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사람을 통해서 더 크게 나타납니다. 더 강하게 역사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통해 최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인간의 불리함이 곧 하나님의 유리함이 됩니다. 나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부요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의 모자람이 하나님의 넉넉함이 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너무 강해서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약해서 쓰임 받지 못하는 자는 없습니다.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의 재주와 솜씨는 흙이 부드럽고 연할 때 더 잘 발휘됩니다. 그러나 흙이 단단할수록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그 결정적인 약점을 최대의 강점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금세기 최고의 의사요 상담자인 Paul Tournier는 고통의 창조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고통이나 약함 자체는 우리에게 저주도 축복도 아닌 중립적인 것이다. 다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창조적으로 혹은 파괴적으로 나아간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승리자들 모두가 고통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킨 주인공들임을 역설합니다.
중국 선교사 H. Taylor는, 「하나님의 모든 거인들은 약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멋진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주역들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한 사람들이다.」
목회자로서 선천적으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Rick Warren 목사님은 약함의 역동성을 이렇게 정의해줍니다.
첫째, 약함은 하나님을 의존하게 만든다.
둘째, 약함은 우리가 거만해지지 않게 막아준다.
셋째, 약함은 서로의 필요를 인식하여 교제를 활발하게 한다.
넷째,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과 사역의 포용력을 크게 증대시킨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의사 중에 누가 훌륭한 의사인가? 실력이 탁월한 의사보다는, 가족이나 자신이 아파본 의사가 훌륭한 의사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공감이 됩니다.
사람은 약하고 부족할수록 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야말로 찬송가 가사처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순진한 신앙으로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21세기 기독교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J. I. Packer라는 신학자가 참 좋은 책을 썼습니다.
「약함이 길이다.」입니다. 원제는 Weakness is the Way입니다.
그는 청소년시절에 교통사고로 머리가 움푹 파이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10년 동안 시커먼 알루미늄 조각으로 머리를 가리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고관절이 탈골되어 상당한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연약함이라는 낮은 문을 통과하며 살고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하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그래서 「약함이 길이다.」(Weakness is the Way)라는 책을 쓴 것입니다.
핵심은 『약함의 은혜, 부족함의 은혜』입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부족하고 부적합한 나를 통해서 그분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역설적 은혜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약함의 미학을 이렇게 예찬합니다.(고린도후서 12:9)
『내 능력은 네 연약함 속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 네 위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여기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문다는 단어는 굉장한 표현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머무를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쉐키나」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정착을 말합니다.
내가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내 위에 고정하여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주둔하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계속 머물러주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나의 약한 손위에 주님의 능력의 손이 머물러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만 명의 고아들을 키운 믿음의 대부 George Muller는 이런 간증을 합니다.
우리들의 그 연약함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찬송을 받으실 그 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는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들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가 친히 우리의 친구이심을 믿을 수 있는 더 큰 근거를 우리는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70여년 살아온 나 자신의 체험입니다.
시험이 크면 클수록 난관이 크면 클수록, 주님의 도우심은 더 가까이 나타납니다.
때때로 나는 완전히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신앙, 더 많은 인내와 실천이 그 축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우리들의 마음을 그 앞에 쏟아 놓는 일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자기가 원하시는 시간에, 자기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약함을 주님 앞에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부족을 숨기지 말고, 펼치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자람과 부끄러움을 주님 손에 올려놓고, 포개어드리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손을 주의 손에 포개고, 나의 발을 주의 발에 포갤 때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 초청 : 1부 / 약한 나로 강하게 … (2~3부) 예수 나의 치료자, 그의 눈이 머무는 곳은 …)
* 약한 나로 강하게
* 예수 나의 치료자
* 목동 지구촌 교회 오시는 길